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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프하지 모하마드

브루나이의 최초 장편영화는 국가종교부에서 제작되었고, 1968년 초연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사용되었던 언어는 표준 말레이어로, 브루나이의 일상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국내영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브루나이극장에 2013년, 저희 회사에서 제작한 ‘아파덴간리나’ 라는 국내 제작영화가 상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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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 최초의 극장 개봉 영화와 영화 산업

할리프하지 모하마드

발표 영상



 

발표 내용

제가 크리에이티브 분야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된 것은 80년대 ‘와리산’(유산)이라는 가족밴드의 일원으로 드럼을 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후에 저는 RTB라 불리는 브루나이 방송국과 도레미 콤보라는 이름의 RTB 어린이밴드에 타악기 연주자로 선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RTB 어린이 공연 워크샵과 TV 리얼리티쇼에도 적극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주로 브루나이의 전통 및 현대무용을 공연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소년 스포츠댄스그룹에 프리랜서로 합류하여 한국은 물론 일본, 런던, 바레인,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서 브루나이 전통무용을 공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에게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니 만큼, 브루나이의 문화를 홍보하는 것이 언제나 큰 즐거움입니다. RTB 쇼에 참여했던 계기로 저는 TV 프로덕션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책을 통해 촬영 기법을 배우기도 하였죠. 당시 브루나이에는 영상이나 영화 제작과정이 없어, 브루나이 내 전문대학의 강의를 들으며 영상제작 기술을 습득해 나갔습니다.


졸업 후 에는 RTB 영화국에서 기술직 수습직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MOU 드라마 제작과정에 참여하면서 연기 경험은 물론, 제작기법까지 덤으로 얻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정중 유심히 관찰하였던 외국 감독님, 출연진, 제작진들의 업무 스타일, 장비의 쓰임새, 작업 문화를 오늘날까지 저의 상황에 적용 및 활용하고 있습니다. 1997년에는 누라인과 결혼하고, 그 후 5년뒤 RTB를 그만두었습니다. 2002년에 그녀와 함께 새로운 프로덕션 회사를 설립하고, ‘리걸블루 프로덕션’ 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매스컴을 전공한 누라인과 기술 및 크리에이티브 전문인 저, 그리고 여러 장비의 결합체인 ‘리걸블루프로덕션은’ RTB로부터 A등급 프로덕션 회사로 인증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자체 제작하는TV 드라마 시리즈와 기타TV 프로그램에새로운크리에이티브스타일과기법들을 실험 적용해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 촬영 시 무선 소형마이크사용, 소프트필터 편집방식 적용 등이 이러한 실험의 실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력에 관하여 저희의 전략 중 하나는 프로듀서, 촬영기사, 편집자, 그래픽디자이너 등 각각 다른 기술을 보유한 4명의 외국인스태프를 고용하여 국내 직원들을 훈련하는데 이바지 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저희 회사의 또 다른 임무는 장편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것입니다.

참고로 브루나이의 최초 장편영화는 국가종교부에서 제작되었고, 1968년 초연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사용되었던 언어는 표준 말레이어로, 브루나이의 일상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국내영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브루나이극장에 2013년, 저희 회사에서 제작한 ‘아파덴간리나’ 라는 국내 제작영화가 상영하게 됩니다.

2012년에 제작을 시작한 ‘아다아파덴간리나’ 는 당시 10주년을 맞이한 리걸 블루를 축하하기에도 좋은 특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객석의 30%만 차도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영화가 개봉하니 첫 주에는 좌석이 비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영화는 7주 간 연속 상영되었죠.


저희의 이러한 노력은 국내 관객들이 보여준 호응으로 보상받을 수있었습니다. 세대가 다름에도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 가족들도 볼 수 있었죠. 관객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브루나이 곳곳을 보고, 브루나이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습니다. 국제 영화계는 4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브루나이 제작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고, 덕분에 싱가포르, 루앙프라방, 미얀마, 한국, 필리핀 등지에서 영화를 상영할 수있었습니다.


저는 국제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영화 제작자들과 네트워크를 확대할 수 있었고, 국제 공동제작에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세안 10개국의 영화산업을 살펴 봤을 때, 그중 규모가 가장 작은 국가는 바로 브루나이와 라오스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는, 제 자신에게 ‘과연 나는 라오스의 사람과 문화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라고 묻곤 했습니다. 반대로 라오스 사람들은 브루나이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아마도 브루나이가 ASEAN 회원국인지도 몰랐다는 쓰디 쓴 대답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라오스를 다음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공동제작이 브루나이와 라오스 두 국가의 문화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믿었고, 이렇게 브루나이와 라오스가 공동 제작 한 두 번째 장편영화인 ‘리나2’가 탄생하게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브루나이에서 2017년 상영되었고, 라오스에서는 2018년에 상영되었습니다. ‘리나2’는 인도, 말레이시아, 루앙프라방, 요르단 그리고 한국에서 개최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습니다. 또한 ‘리나2’는 ASEAN 국제영화제인 AIFFA2019에서 ASEAN 스피릿 어워드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어떻게’ 영화의 내용을 제작하느냐는 문제 외 에도 ‘무엇을’ 담는가와 ‘어디에’ 배급하는가 라는도전 과제가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브루나이 관객들은 어렸을 때부터 외국 콘텐츠를 보며 자랍니다. 국내 콘텐츠에 대한 수용도도 여전히 낮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플랫폼의 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관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덜하다는것이고, 이는 곧 자금조달과 제작의기회가 점점줄어든다는것을뜻합니다. 2013년 상영된 제 첫 번째 영화를 통해서 저는 브루나이의 언어와 출연진을 활용하여 제작한 국내산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고 관객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보이려 노력했습니다.


브루나이에서 더 큰 영역으로 나아가면 다른 아세안 국가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유머코드 등 일부 유사한 점 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문화에서 자랐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콘텐츠와 같이 국가 간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범 국가적인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브루나이의 관객들이 타 아세안 국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아세안 콘텐츠들이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들이 생성된다면 얼마나좋을까요? 저희 두 번째 영화 ‘리나2’는 브루나이와 라오스가 얼마나 잘 협력했는지, 관객들에게 얼마나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또한 브루나이에는 아직 영화산업의 발전을 추진하는 전담 부처가 없기 때문에, 저희 브루나이영화 제작자들은 자체적으로 공유세션을 조직하여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우리의 젊은 영화제작자들이 저희 세대가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벗어나, 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기쁩니다. 조만간 브루나이의 영화 제작자 단체가 법적인 힘을 지닌, 공식적으로 영화발전추진 위원회를 결성해, 콘텐츠 산업의 기반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노멀 시대가 새로운 도전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시대에 적응하고, 새로운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있습니다. 올해 한-아세안 문화혁신포럼이 개최 되고, 함께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나누고 서로 배울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브루나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발표자 소개

나는 2002년 5월 아내와 함께 전 재산을 투자해 리갈블루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처음 카메라 1대 만을 가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최고의 텔레비전 드라마 부문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에서 점차적으로 입지를 다져왔으며, 2013년 최초의 극장용 장편 영화인 <리나-리나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외부 투자와 지원 없이 순수하게 프로덕션의 자원으로만 제작했으며, 처음으로 지역의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해 브루나이 언어로 완성했다. 당시 영화의 교육, 기술적 환경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가 영화를 완성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 프로덕션은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받았으며 더 기쁜 사실은 브루나이를 대표해서 12개의 국제 영화제에서 우리를 내 고국을 대표해 초청해 주었다는 점이다. 2013년 장편 영화 제작을 완성하기 전 우리는 최초의 녹음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학의 학생을 훈련하는 일을 함께 병행하면서, 우리가 제작하는 다양한 프로덕션의 과정에 젊은 학생들을 참여시키기도 했다. 초기 부터 우리와 함께 일하는 12명이 스태프가 있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국제적인 협업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난 언제나 가족 중심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내 주변의 스태프의 삶과, 그들이 원하는 가치와 목표, 그들이 원하는 기술과 교육에 늘 관심을 갖고 함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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